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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서양 성의 스테레오타잎을 보여주는 Neuschwanstein성

Category : AD, DESIGN & WEB | 2019.01.02 12:31




주소 : Hohenschwangau, Germany

완공 : 1886년
건축가 : Eduard Riedel
입안자 : Ludwig II





1. 


성(城) :  적을 방어하기 위한 거점으로 흙이나 돌 등을 높이 쌓아 만든 군사적 구축물. 


유럽에서는 성(城)을 CASTLE이라고 하는데 이 동양의 城과 CASTLE의 의미는 조금은 다릅니다.  CASTLE은 성(城)이 가지고 있는 방어시설을 넘어서 그곳에 군주나 귀족들이 일상 직무와 거주의 성격을 가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CASTLE을 성(城)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성관(城館)이라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城이든 CASTLE이든 원래의 목적은 위에서 언급한 의미대로 적의 공격 및 각종 위협에서 보호받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목적과 전혀 상관없이 지어진 CASTLE이 있기도 한데 바로 그 유명한 Neuschwanstein(노이슈반슈타인) 성입니다.  



(그림1. Neuschwanstein의 모습 ) 




독일 바이에른 주에 있는 이 성은 독일어로는 Schloß Neuschwanstein, 의미는 새로운(Neu) 백조(schwan) 돌(stein) 성(Schloß), 영어로 New Swanstone Castle로 해석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입니다.
그런데 이 성이 지어졌을 때는 1886년인 19세기로 이 때는 이미 독일 전역에 철도가 깔려있고, 증기선이 발명된 시점. 당연히 대포의 발달로 인해 성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목적인 적을 방어하기 위한 거점으로써 의미가 무용지물인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전 세기인 18세기 때부터 수많은 성들이 저택으로 구조 변경할 때였죠. 그런데도 저렇게 성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 당시 바이에른 왕국의 왕 Ludwig II (루트비히 2세)의 취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내막을 좀 자세히 살펴보자면,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이자 부왕인 Maximilian II (막시밀리안 2세)는 ‘백조의 성’이라 불리던 Schloß Hohenschwangau (호엔슈방가우 성)을 사들여 NEO GOTHIC양식으로 재건축하였는데 여기서 루트비히 2세는 유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림2. Hohenschwangau 성)




이런 부왕의 영향 덕인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유명한 음악가인 Wilhelm Richard Wagner(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와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는데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오페라 작품들을 썼고, 이 때문에 루트비히 2세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호엔슈방가우 성만 가지고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들을 언젠가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그의 생각은 1862년 그가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하나씩 실행되게 됩니다.
먼저 어릴적 친구인 바그너를 궁정으로 불렀고, 그가 오페라를 쓰면 그것을 모티브로 각종 건축물 등을 건축한다던가 자신의 뮌헨 궁전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한다던가, 치엠 호수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딴 궁전을 짓게 하는 등등이 그것인데 이런 일들은 필연적으로 국고를 낭비하게 되죠. 이런 일들은 당연히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결국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축출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에 상심한 루트비히 2세는 마지막으로 그의 혼을 불사른 것이 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 Wartburg(바르트부르크) 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성을 호엔슈방가우 성 맞은편에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호엔슈방가우 성의 이명이 위에 언급한대로 ‘백조의 성’이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성 명칭이 새로운 백조의 (石)성인 Neuschwanstein이 된 것입니다.




(그림3. 백조의 모습이 잘 드러난 Neuschwanstein성 옆면 사진)







2. 


문제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지어질 장소는 지형이 험해 그의 계획대로 지을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지형이 험한 데다가 원래의 방어목적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에 뒤쳐진 성을 짓는 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국고를 낭비할 수 밖에 없었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림4. 건축 당시인 Neuschwanstein성 사진 자료)




그리고 이 노이슈반슈타인 성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 건축물을 같이 짓고 있었다는 것이 더더욱 이런 국고 낭비를 부채질 했지요. 결국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해 밀리고 있고, 왕권이 그닥 강하지 않았던 바이에른 왕국에서 이런 국고 낭비의 성 건축은 큰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1886년 루트비히 2세는 의료진으로부터 정신병자 판정을 받게 되어 왕위에서 퇴위를 당합니다. 그리고 퇴위당한 지 3일 만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한 채로 발견됩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92년 완성되었는데, 그것도 원래 루트비히 2세가 계획한 것의 1/3 정도로 축소된 채로, 결과적으로 루트비히 2세는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죠.





(그림 5. Neuschwanstein성의 각종 VIEW와 내부 사진들)




  


3.


아이러니하게도 지을 때 바이에른 왕국의 국고를 파탄상태로 몰아넣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그 외 루트비히 2세가 지었던 여러 건축물들은 그의 사후에 관광지로 개방되면서 엄청난 관광수익을 안겨주게 되고 이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원래 성의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닌 건축물이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에 나올법한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성에 모티브를 얻어서 만들어진 것이 디즈니 랜드의 신데렐라 성.
이런 덕분에 서양 성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일종의 스테레오 타잎을 제공하기도 한 대표 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6. 원래 계획의 1/3밖에 지어지지 못하였다는데 완벽하게 계획대로 지어졌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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