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매너리즘!
1. 매너리즘?
매너리즘 : 예술의 창작이나 그 발상면에서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 표현수단의 고정과 상식성으로 인하여 예술의 신선미와 생기를 잃는 현상
이런 사전적 의미에 더하여 오늘날 우리는 현상유지의 경향이나 자세를 가리켜서도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어떤 가수가 데뷔 때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양식의 음악성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승승장구 하더만 2집,3집을 내면서 인기유지에 급급, 새로운 창조에는 등한시 하고 기존의 방법에만 얽매어 활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저 가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라고 흔히 표현하지요. 이렇듯 매너리즘이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로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2. 미술사조의 매너리즘
마니에리즘, 이탈리아 어로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라고도 불리우는 매너리즘은 원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가교역할을 했던 16세기 후반의 미술사조를 뜻하는 일컫는 말입니다. 시기적으로 라파엘로가 죽은 이후 1525년부터 바로크 미술이 시작되는 1600년까지의 75년간인데, 예전에는 후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사조이지요.
근래에 와서야 정당하게 대접받고 후기 르네상스에서 독립되어 나온 사조로 인정받은 탓에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원래 미술사조라는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너리즘이란 미술사조가 어떤 것이길래 원래의 의미와 달리 현재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말로 쓰일까? 이것에 대한 본격적인 답을 하기 전에 먼저 매너리즘 회화가 어떤 것이고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매너리즘의 어원은 ‘손’이란 뜻을 가진 이탈리아 어인 ‘Mano’에서 왔다고 하며 그 어원이 뜻하는 바는 매너리즘 미술사조는 창의성보다는 손재주를 부리는, 지나치게 과장된 수법의 인위적인 미술적 특성을 가지는 사조로 생각되어왔습니다. 그 당시 바로크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매너리즘 회화들은 기존의 회화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특징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매너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비례에 벗어나는 길쭉한 신체의 사람’, ‘기존의 구도에 벗어난 불안정한 구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파르미자노(Parmigianino 1503~1540)의 <긴목의 마돈나>는 이런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르미자노 作, 긴목의 마돈나>
먼저 이 그림을 보면 전 시대 르네상스 대가들이 그린 그림과는 무언가 다른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이 그린 <성모상>에서 보여준 단순함과 자연스러움과 비교해서 파르미자노는 성모를 자기 나름대로 우아하고 고상하게 그리려고한 나머지 성모의 목을 마치 백조처럼 길쭉하게 그렸습니다. 그는 여기서 인체의 비례를 기묘한 방식으로 길게 늘여놓은 것이죠.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가진 성모의 손, 전경에 있는 천사의 긴 다리, 초췌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펼쳐보고 있는 비쩍마른 예언자, 도저히 아기의 몸이라 볼 수 없는 아기예수의 길쭉함 등은 마치 일그러진 거울에 비친 상처럼 보입니다. 구도 또한 비정상적입니다. 인물들이 성모 양쪽에 균등하게 배치하는 것 대신에 붐비는 천사들을 비좁은 왼쪽 구석에 몰아넣고, 오른쪽은 넓게 터놓아 키가 큰 예언자의 모습 전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리 때문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너무 작아져서 그 키가 성모의 무릎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르미자노 외에도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나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등이 있는데 이들의 작품들을 봐도 이런 부자연스러운 구도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너리즘 회화들의 자체가 풍기는 인상은 ‘굉장히 불안정하다’입니다. 인체비례나 구도로 보나 우리 눈에 익숙한 비율,비례, 황금분할등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낯설고 기괴하게 보이는 것이죠.
3. 매너리즘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말로 되기까지
왜 그럼 이런 일종의 비정상적인 그림들이 16세기 후반의 미술사를 잠시나마 지배하게 되었을까? 예술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16세기 후반은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몰락시기였던 것이죠. 신대륙의 발견으로 인해 상업의 주요항로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탈리아는 신흥 부국인 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에게 밀려 내리막 길을 걷게 된 때입니다. 이런 유럽의 주도권이 바뀌면서 유럽사회의 전반은 혼란스러워 졌고, 거기다 더해 종교개혁에 의한 사회적 동요로 그 당시의 사람들의 심리적 불확실성을 증폭시켰습니다. 이런 사회상에서 르네상스 시대와 같은 이성과 체계적으로 정교하게 표현된 삶이 예술 쪽에 투영될 수 없었겠죠. 즉 매너리즘은 그 당시 과도기적 사회상황에 의해 심리적 불균형을 불러일으킨 결과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르네상스에서 보여주던 안정적 구도와 비례의 그림들 보다는 불안정한 느낌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매너리즘의 핵심 사조는 주지주의적 이상주의입니다. 현실의 삶과 자연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현시하는 르네상스와 달리 자기의 머리 속에서 구축된 미의 이념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매너리즘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나친 의식적 구성화에 의한 냉담성,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 극단적인 장식적 경향 및 철저한 절충주의 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매너리즘은 이전의 가치 체계에 대한 하나의 반역의 시대라 볼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미술사조인 매너리즘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원인은 앞서 말했지만 안정화의 시대라 할 수 있는 바로크 시대의 비평가들의 눈에 16세기말의 미술가들의 그림은 불안정하고 기괴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황금비례 및 인체의 비례를 무시한 길쭉함과 구도의 어긋남, 이들이 볼 때는 이들의 그림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들의 말을 빌자면 매너리즘 시기의 화풍은 르네상스 시대 때 전인들이 보여주었던 조화와 아름다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결론 하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것을 열심히 연구하고 수법을 모방하려하는 수준, 가식과 천박한 모방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매너리즘 회화의 특징 때문이기도 한데, 독창적이지만 그 근본은 르네상스 전인들의 기법을 답습해왔기 때문이지요. 즉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매너리즘의 사전적인 의미인 ‘현상 유지의 경향’을 뜻하는 말은 여기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으로 당시 여겨져 부정적인 의미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보통 미술사를 다룰 때도 르네상스 시기에서 바로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행여 미술사에서 매너리즘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등에 비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지요.(한 페이지도 안될정도로....)
이렇게 된데에는 불안정안 시대때 그 생명력이 짧았던 미술사조였던 탓도 있는데다가 이와 대립항에 있는 후세대의 바로크가 워낙 강한 힘을 발휘하고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입니다.
4. 과연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미술의 단순한 모방에 그쳤는가?
이에 대해 현재의 답은 ‘물론 아니다’입니다. 현재에서 매너리즘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反르네상스의 현상으로 현대 미술의 형식의 파괴의 시조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또 다른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틴토레토의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를 예를 들어보도록 하죠.
<틴토레토 作, 용과 싸우는 성 게로르기우스>
그림을 보면 주인공인 성 게오르기우스는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이전의 일반적인 구도의 법칙과는 정 반대로 배경속에 멀리 들어가 있습니다. 반면에 공주는 마치 그림 속에서 곧바로 우리들을 향해 달려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일반적인 구도라면 성 게오르기우스를 중심에 놓고 가장 돋보이게 할 텐데 말이죠. 이런 일반적인 구도의 파괴는 현대 미술에서 추구하고 있는 그것과 일맥상통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매너리즘 시대의 최고의 화가로 일컫어지는 엘 그레코의 ‘요한 묵시록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을 살펴보도록 하죠.
<엘 그레코 作, 요한 묵시록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
이는 완전히 현대 미술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놀라운 작품으로 흡사 환상주의 계열의 작품을 보는 듯 합니다. 기존의 질서를 철저하게 反하고 기존의 질서보다는 자신의 미의식과 자의식이 주가된 이 작품은 당시 그 시대 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들만의 화법과 구도를 보여주었고 이는 현대미술의 바탕을 이루게 했다고 요즘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즉 이전의 가치 체계에 대한 하나의 반역의 시대로서 기존의 형식의 답습에 반발하는 요즘의 현대 미술계의 성격을 이미 16세기 말 매너리즘이 보여줬던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런 시도가 과연 예술의 창작이나 그 발상면에서 독창성을 잃고 이전 것을 답습하는 것인가요?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평론가들에 의해 조롱받던 의미의 매너리즘은 현대에 와서야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5. 그러나...
이제 매너리즘의 진정한 의미와 의의를 안 이상 매너리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매너리즘 시대때 예술가들의 노력과 창작의욕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지양해야겠지만 매너리즘이 부정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바로크 시대인 17세기 부터였습니다. 무려 4세기 동안 안 좋은 뜻으로 쓰인 것을 현대에 와서 재평가 받고 한다고 해서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긴 힘들다 볼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가 매너리즘의 원래 뜻 자체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뭐 노력은 계속해 나가야겠지만 글쎄요.
적어도 이 포스팅을 보고 나서 매너리즘의 원래 뜻을 알게 되셨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
참고문헌
서양미술사 - 곰브리치 저
EBS 청소년을 위한 미술 감상 - www.ebs.co.kr(지금도 있나?)
동아 대백과 사전 - 마니에스리모 편
뱀발) 원래 이 글은 2001년도 대학 미술동아리 회지에 썼던 글을 수정보완해서 올린 글입니다. 지금 보면 글의 호흡이라던가 전개 방법이 상당히 미숙했던 글이었던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