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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는 로마시대에 SPICE가 아니었다

Category : 과학,CG,상식 | 2012. 7. 21. 20:43

 

 

 

 

 

 

 

SPICE(香辛料)는 글자 그대로는 향기와 매운맛이 있는 재료라는 뜻으로 음식에 부가적으로 넣어 음식에 풍미를 주어 식욕을 촉진시키는 식물성 물질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SPICE는 '향신료' 이전에 '양념'으로도 해석 되어 쓰이지만 소금, 설탕, 식초, 간장 등의 양념 및 조미료는 엄밀히 말하면 현대 향신료의 범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SPICE라는 단어를 학술적이나 향신료에 국한지어 사용할 때 어느 정도 용어의 범위를 설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현대에서 양념이 아닌 향신료로써의 SPICE의 정확한 범위는 식물성으로, 보통 풀 이외의 열매나 종자, 나무껍질 등을 이용하여 음식에 풍미를 주는 재료들을 의미합니다. 보통 후추, 육두구, 정향, 샤프란, 계피가 여기에 속하며, 그런 의미에서 고추, 참깨도 향신료로 분류 합니다.(보통 한국사람들은 고추, 참깨는 향신료로 생각 안하고 그냥 양념으로 생각하죠. 그래서 양념과 향신료의 차이를 더 모호하게 생각)

 

 

 


SPICE의 어원을 보면, 라틴어의 Species(스페키에스)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특별한(Special)과 특히(especially)와 같은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스페키에스의 문자적 의미는 '유형'이나 '종류'였지만 (생물학에서는 여전히 그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Species는 種) 나중에 가서는 관세를 부과할 만한 물품의 유형이나 종류를 지칭하는데 사용됨으로써 값진 물건을 가르키는 단어로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때의 SPICE는 관세가 적용되는 사치품을 일컫는 말이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SPICE지만(비싼 샤프란 빼고) 당시 서양에서 SPICE는 생산되지 않고 100% 동양에서 수입되었는데,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어 말이나 낙타에 싣고 육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이게 인도를 거쳐 유럽까지 들어오려면 너무 먼 거리였죠. 게다가 도적떼의 습격을 받는 일도 빈번해서 매우 위험했고, 이런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유럽에서는 비쌀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베네치아 상인이 이슬람에서 SPICE를 사들여 몇 배의 값에 팔아넘기는 등 유럽 향신료 시장을 독점한 탓도 있고, 나중에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여 비잔티움을 멸망시킨 다음부터 유럽이 원하는 SPICE는 모두 아랍 상인의 손을 경유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가격은 엄청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SPICE를 구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열망이 대항해 시대를 가지고 왔고 이것은 유럽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는 부수입?과 더불어 제국주의를 낳게 되는 테크 트리는 다들 아시죠?)

 

 

 


다시 사치 관세품으로 돌아와서, 5세기에 작성된 로마 문서인 알렉산드리아 관세표에는 이른바 관세 부과 대상 종류라는 제목아래 54종이 열거 되어 있었는데, 이 목록에는 육계, 계피, 생각, 백후추(후추와 다름), 필발, 카르다몸, 알로에, 몰약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치 품목으로 간주되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25퍼센트의 관세가 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동양에서 온 SPICE는 바로 이 항구를 통해 지중해로 들어온 다음, 거기서 또다시 유럽의 소비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물품들도 바로 SPICE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사자, 표범, 비단, 상아, 거북 껍질, 인도인 환관이 그것입니다. 이것도 SPICE인 것이죠. 즉 당시에 SPICE는 우리가 생각하는 향신료가 아닌 사치 관세품으로 봤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롤스로이스나, 루이 비통 핸드백이라던가, 드비어스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도 SPICE인 것이죠.

이렇듯 관세를 부과할 만큼 희귀하고 값비싼 사치품만을 가리켜 SPICE라 부르기 때문에, 특정 품목의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지면 관세 부과 대상 목록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향신료이자 향신료의 대명사인 후추는 로마가 자력으로 운반해 왔기 때문에 싸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후추는 알렉산드리아 SPICE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개념으로 볼 때 후추는 SPICE가 아니고 인도인 환관은 SPICE가 맞는 셈이었지요.(인도인 환관이 향신료?.... 왠지 호러가 따로 없네요 ㅎㅎㅎ)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SPICE는 협소하게 식료품에 국한된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후추는 그 관세표에 나오지 않았지만 SPICE이며 사자 및 호랑이는 그 관세표에 나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SPICE가 아닌 것이죠. 이렇듯 어원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 및 당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단면인 거 같습니다.

 

 


참고문헌
식량의 세계사, 톰 스탠디지, 박중서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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