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須讀五車書에 관해 이것저것
男兒須讀五車書
장자(莊子)의 천하편에 나오는 말로 “남자는 반드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뜻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명한 한자성어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줄여서 ‘오거서’라고 통용되기도 하는데 원래 말은 남아수독오거서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오거서는 말그대로 그냥 다섯 개의 수레에 담긴 책을 뜻하니까요.
제가 이 말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한자 시간이었는데 그때 한자 선생님이 다섯 개의 수레에 책이 쌓여있었고 그것을 모두 다 읽은 옛날 사람들의 독서력과 학습력을 높이 평가 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러면서 의례 따라오는 말씀 “너희도 책 좀 많이 읽어라”) 실제로 그 당시 제가 생각하기에도 “와 다섯 개의 수레에 쌓인 책이라.... 정말 어마어마한 양인걸!”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春秋戰國時代 - 秦 - 漢 -新 - 後漢)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고,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이므로 자연(自然)하다고 본다.
(蔡倫 ?~121?)
후난[湖南] 출생. 종이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 궁중의 집기 등을 제조 ·관리하는 상방령(尙方令)으로서, 97년에 검(劍) 등을 만들었고, 그 후 목간(木簡) ·죽간(竹簡) ·견포(絹布) 대신 쓸 수 있는 서재(書材)를 발명했다. 이것은 톱밥 ·헝겊 ·풀 등을 소재로 한 ‘채후지(蔡侯紙)’라는 종이이다. 그는 114년 용정후(龍亭侯)로 책봉되어 장락(長樂:福建省) 태복(太僕:卿)이 되었으나, 안제(安帝) 즉위 후에 정쟁에 말려들어 음독 자살하였다.
그렇다면 장자가 살아있을 때 책이라면 바로 목간(木簡)이나 죽간(竹簡)을 의미하는 것이었지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종이로 된 고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쓰는 책의 한자인 冊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가끔가다 비단을 이용한 백서(白書)가 있었지만 서양중세의 양피지처럼 비싼 가격 때문에 널리 쓰일 수 없었지요. 아주 중요한 사항이나 극비문서에만 쓰였다 합니다. 이런 백서 같은 특수경우를 제외하고, 당시 보편적이었던 목간이나 죽간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이로 된 옛 고서의 책 한권 분량에 이르려면 엄청난 분량이 필요하며, 이를 보관하려면 역시 그에 부합하는 장소가 필요했다는 말인데, 거기다가 무게도 일반책 한권 분량에 이르려면....
(그림2. 목간)
(그림3. 죽간)
(그림3. 죽간의 보관법. 돌돌 말아 보관했는데 이 한페이지 분량의 부피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거서에 실린 목간 내지 죽간이라고 해봤자 그 정보의 양은 별게 아니란 것으로 귀결됩니다. 아마 현재로 따지면 문고판 4권도 안 되는 양일 겁니다.(당시 한자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을까요? 음하하핫)
뭐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무조건적으로 판단하는 것 만큼 우스운 것도 없지만 현대인들이 춘추전국시대 장자 앞에서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해도 무방할듯 하군요 ^-^
암튼 서양의 양피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목간과 죽간 역시 일반 서민이 쉽게 접근하고 소유하기엔 진입장벽이 높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식자층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HIGH CLASS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채륜의 종이의 발명은 부피가 엄청난 문서를 작은 책으로 줄일 수 있게 하여 학문 등 여러 분야에 지대한 공헌 및 이후 지식이 특수계층만의 공유물에서 일반 서민들로 보편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언어 장벽은 일단 논외로...)